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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유토피아 / 2023 2023/08/12 (Sat)
유토피아는 없기에 유토피아.
주말을 맞이해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고 왔습니다. 상영관은 언제나 그렇듯 메가박스 창동점. 처음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던 영화였는데, 입소문이 괜찮은 편이라서 보게 되었지요. 그렇기에 항상 그러했지만 예고편은 커녕 사전 정보 같은 것은 거의 없는 채로 봤습니다. 포스터 정도는 봤고, 캐치 프라이즈도 보긴 했으니 그 정도로 어느정도 어떤 장르인지는 알 수 있었긴 하지만 말이지요. 원작이 웹툰이라고는 하던데, 웹툰을 안 본지가 한참은 되었으니 그쪽으로는 딱히 말을 할 것이 없습니다. 원작 제목은 영화와는 다르게 ‘유쾌한 왕따’라고 하던가요. 제목만 봐서는 무슨 내용인지 모를 물건이던데 배경 자체는 영화와 거의 비슷하던가 봅니다. 처음에 원작 이름 듣고는 완전히 원작을 뜯어고친건가 싶었는데 알고보니 원작도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이란 것을 알게 되어 조금 놀라기도 했지요. 예, 영화 역시도 포스터를 보면 대충 알 수 있듯 포스트 아포칼립스입니다. 사실 포스터만 보면 폐허 위에 덩그러니 멀쩡한 아파트 한 동만 있는 것이 보여서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아닌 재난물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하지만, 보고 오니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이 맞더군요. 국내 영화에서는 그렇게 시도하는 장르가 아닌 점도 있어서 신기하기는 했습니다. 물론, 이전에 연상호 감독의 ‘반도’가 있기는 한데 이쪽은 좀비물 소재를 쓴 것이라 마냥 같다고 하긴 힘든 점이 있으니까요. 근데 그거 액션물에 더 가깝지 않았나.

어느 한 순간 미증유의 대 붕괴로 인해서 세상이 멸망한 세계관을 다루고 있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입니다. 극단적이라 할 정도로 세상이 완전히 뒤집혀져서 정말로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망해버린 모습을 보이더군요. 그리고 그런 상황에 기적적으로 한 동만 멀쩡히 서있는 아파트를 배경으로 인간군상의 이야기를 그리는 모습입니다. 어떤의미로 보자면 살짝 폴아웃 시리즈의 그런 느낌도 풍기더군요. 특히나 개인적으로 느꼈던 것은 폴아웃3의 배경인 수도황무지였습니다. 그보다 더 심하게 망가졌긴 하지만, 느낌은 딱 그랬던 느낌. 영화 등급도 등급이다보니까 식인까지 묘사되는 폴아웃과는 다르긴 한데 정말로 그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도 배경은 한국이니만큼 총이 거의 안 나온다는 점에서 다르다 할까요. 어찌보면 폴아웃보다도 더 삭막한 느낌을 많이 받는 편이었는데 이유라면 라디오 조차도 안 나오기 떄문인 것 같습니다. 시종일관 우중충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는데, 이건 세상이 망해버린 직후를 그리고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시기상 10월부터 시작인 것 같은데, 이상 기온으로 강추위가 찾아오고 그런 와중에 대지진인지 뭔지로 세상이 망해버린 느낌. 단순히 한국만 망한 것은 아니고 다른 나라의 보도진이나 구조대의 ‘ㄱ’ 조차도 안 나오는 것을 보면 그냥 전 세계가 동시에 망했다 하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합니다. 원인 같은 것은 나오지 않아서 그저 배경 설정에 불과한 느낌이 되어버렸지만서도.

꽤나 종교적인 영화이기도 한 편인데, 기독교적인 소재들을 많이 쓴 편이라서 그쪽 지식이 있다면 조금 더 이해하기는 쉬웠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성경은 약간 읽어본 것이 전부이긴 하지만, 뭐 그럭저럭 아예 이해를 못 하고 넘어갈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성경이라고는 해도 출애굽기(탈출기) 정도 읽어봤으면 되는 느낌. 메타포라던지 이런저런 상징은 많다고 보는데 저는 그런 지식은 없으니만큼 그에 관해서는 뭐라 말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몰라도 재미있게 볼만한 영화이기도 하니까요(그 ‘재미’가 다른 재미라 그렇지). 확실히 눈에 띄는 것은 주연들 연기가 좋다는 점이고, 그 중에서 특히 메인 캐릭터라 할 수 있을 김영탁(이병헌 역)이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 영화 보기 시작했을 때는 처음부터 나왔던 김민성(박서준 역)이 주인공인 줄 알았지만, 영화 보고 난 후에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야기를 이끌어나간 것은 이병헌이 맡은 김영탁이었다 생각합니다. 그외로 또 하나의 주역이라 할 수 있을 명화(박보영 역)도 있기는 한데, 후술하겠지만 캐릭터라기 보다는 장치로만 보여서 조금 아쉽게 느껴지더군요. 이렇게 느끼는 것은 영화상에서 비중이 그다지 많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덕에 꽤나 본 사람들에게 안 좋은 평가를 받는 인물이기는 하던데, 저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그저 영화 시간상 전개상의 문제로 분량을 못 챙겼다 보는 편이지요. 그래서 더 캐릭터라기 보다는 장치 같다 느끼는 것이겠지만.

전체적으로 잘 만든 영화이기는 합니다만, 호불호가 갈릴만한 부분은 당연히 있는 편입니다. 은근히 수위가 센 부분들이 있고, 분위기 환기될만한 그런 전개도 딱히 없어서(초중반에 약간 가벼운 장면들이 약간 있긴 하지만) 시종일관 무겁게 착 눌린 분위기도 그렇고 가벼운 마음으로 하하호호 웃으면서 볼 수는 없는 편입니다. 거기에다가 이걸 또 뭔가 재난물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였다 실망하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그런 부분도 싫을 사람은 싫겠지요(재난물로서의 요소는 없는 편이나 마찬가지라). 그나마의 위안거리라면 등장인물 중 한 명은 약간이나마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는 점일겁니다. 그 역시도 장치라 할 수 있겠지만서도.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이런 상황이 되었다면 이렇게 행동했을 것 같은 사람들이 태반일테니 그런 부분에서 꽤 공감이 가면서도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라는 고민도 함께 안겨주는 영화더군요. 박보영이 맡은 명화는 영화에서 보자면 지나친 이상론자로만 보일 수도 있는 것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캐릭터 위치상 인간의 선의를 상징하는 캐릭터로 보기는 했고(그렇다고 완전히 무고한 그런 캐릭터도 아니긴 하다는 점에서 복잡성이 있다 해야겠지만), 결말도 그렇고 어느정도 와닿기는 했지만 분량 자체를 너무 편의주의적으로 준 느낌입니다. 조금 더 서사를 깔아줬어야 하는데, 대체로 수색팀쪽에 비중을 더 둔 편이라 아파트 내부와 주변에서의 이야기를 그리지 않은 점이 아쉽더군요.

그래도 간만에 꽤 잘 나온 한국 영화라 생각합니다. 크게 흥행하기는 힘든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이긴 한데 과감하게 내놨던 점에서, 또 배우들 연기가 출중해서 분위기를 상당히 많이 잡아준다는 점에서도 꽤 몰입감이 있었습니다. 그다지 대단한 기대를 안 하고 본 영화긴 하나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못 만든 영화는 아니다 싶더군요. 또, 조금 시의적절한 시기에 개봉했다 생각하는 것이 최근에 ‘순살 아파트’하면서 꽤나 이슈가 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캐치 프라이즈도 그렇고 포스터도 그렇고 본의아니게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큰 편이라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인 점수를 주자면 9.0/10점 정도. 아 결말 부분은 차치하고 작중의 아파트가 결국 그런 결말을 맞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일단 제목부터 ‘콘크리트 [유토피아]’인데, 보통 낙원은 없으니까 낙원이고 무너지기에 낙원이니까요. 더불어 포스트 아포칼립스물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 아파트의 주민들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뻔히 보일 정도였던터라 결말이 신기하거나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다 생각합니다. 이거 하나로 끝나지 않고 유니버스로 묶어서 더욱 전개한다는 소리도 있던데 그게 또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군요. 꾸준히 잘 나올 수 있을지 어떨지. 배경 설정상, 작중에서의 이야기 전개상 이런저런 이야기들 많이 나올법한 물건이기는 한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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